디자이너 수업 - 인생의 반전, 디자이너가 되다.

명동으로 진출하다.

디자이너로 광주에 상륙하다.

5.18 민주화 운동과 김규옥 - 삶의 전환

우리가 왜 맞아야 하는가!

그때의 심정을 글로 남겼다.

1980년 5월 21일 나의 일기

대인시장, 양동시장 현장

베드로전서 4장 12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제2막 부푼 꿈과 낙향

디자이너 수업 - 인생의 반전, 디자이너가 되다.

나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생각할 여유도 없이 무조건 했다. 그만큼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다 이렇게 살아선 안되겠다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무엇인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 고민을 한창 하던 1974년도에 서울 남산 밑 퇴계로 3가에 있는 국제복장학원을 소개받았다.

그 학교는 그 당시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옷 을 만들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우리나라 패션에서 창의적 인 발자취인 패션일러스트레이션, 모델학과와 의상박물 관 등은 최초로 그 학교에서 이루어졌다. 86년의 전통을 가진 이 학교는 교육을 통하여 축적된 이론과 실무중심 교육시스템으로 국내 패션산업을 이끌어 가는 졸업생과 해외패션 자매학교와의 네트워크를 통하여 명실공히 한 국 최고의 패션 학교가 되었다. 한마디로 국제복장학원은 나중에 국제패션디자인직업전문학교로 성장한 대한민국

패션의 역사였다. (국제패션디자인학원인 국제복장학원 은 1938년에 한국최초로 패션교육을 시작하였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에게는 따로 비 빌 언덕이 없었기에 사생결단으로 배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 학교에서 공부한 지 6개월이 지나던 중에 나와 유병찬 그리고 이성찬이 포함된 3명이 대한민국을 대표 할 만한 디자이너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할 일 을 제대로 찾았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고의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