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60장 1절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안영로 목사

내가 김규옥 목사를 만난 지가 어느덧 40여 년이 넘는다. 처음 만났을 때 김규옥 목사는 기골이 장대하고 외모 가 준수한, 예의가 바른 젊은 목사였다.

김규옥 목사에 대한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되살리며 추천사를 쓰려고 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1980년대 후반 우리 사회 는 동서 분열과 양극화가 매우 심했던 힘겨운 시기였다. 그는 사재를 털어 광주공원 밑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하였 다.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무장된 김규옥 목사는 무료 급식소를 통해 소외되고 버림받은 노인들에게 큰 의지가 되어주었다.

이후 무료 급식소는 더욱 확장되어 한 끼 점심을 때우 기 위해 광주지역 곳곳에서 찾아온 어려운 어르신들의 가 장 좋은 휴식처가 되어주었으며, 친구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사역은 광주 지역사회에 큰 감동을 주었다. 어느 단체나 교회,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한 사역을 김규옥 목 사는 홀로 온 몸을 던져 감당하는 큰일을 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갈릴리, 광주의 성거산 기슭 광주공원에 세례 요한처럼 나타난 그의 사역은 우리 사회 전반에 새로 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정치인들과 정치지망생들은 김규옥목사의 환심을 사 서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랑의 식당을 기웃거리 기도 하였다. 하지만 김규옥 목사는 흔들리지 않았고, 언제나처럼 순수하게 무료 급식소를 운영해 갔다.

그는 진정한 예수꾼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 지고 시대의 십자가를 진 사람이었다.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복음의 사람이었다.

내가 광주광역시기독교교단협의회 회장을 역임할 때 김규옥 목사는 사무총장을 맡아 큰 도움을 주었다. 2002 년 당시 월드컵경기장을 짓고 월드컵경기장에서 광주광역시 기독교계 전체가 모여 '2002년 광주광역시 복음화 대성회'를 갖게 된 일이 있었다.

그는 완벽할 정도로 철저하게 기획하고 준비하여 진행 해 갔다. 조금도 빈틈이 없었다. 그의 그런 노력으로 5만 여 명이 모인 집회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김규옥목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김규옥목사는 복음의 거지였다.

청소년과 노인들을 위해서는 어떤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관심 속에 소외되고 버림받은 노인과 청소년들을 위 해서는 모든 자존심을 길바닥에 쏟아붓는 그들의 진정한 이웃이었다.

최근 사랑의 식당이 여러 어려움으로 인하여 잠시 문을 닫게 되었다고 한다.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